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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스택만큼 중요한 비즈니스 도메인

business domain

개발자 채용을 위한 면접을 하다보면 본인이 합류하게 될 회사나 팀이 어떤 기술을 사용하는지에 대해 신경을 쓰는 지원자들이 정말 많은데요. 어떤 프로그래밍 언어로 개발을 하는지부터, 어떤 프레임워크와 라이브러리를 사용하는지, 어떤 데이터베이스와 클라우드 컴퓨팅을 쓰는지 등등…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잊는 질문이 이어지죠. 제 답변을 들은 후 실망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지원자도 보았습니다 😞 그러나 정작 본인이 지원한 회사가 어떤 사업을 하는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좋은 질문을 하는 개발자들은 상대적으로 드문 것 같아요. 혹시 기술 스택(Tech Stack)만 나랑 잘 맞으면 어떤 비즈니스든지 입사해서 천천히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

사실 제가 예전에 그랬거든요… 하하 😂

저도 예전에는 이직하거나 팀을 옮길 때 사용하는 기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특히 한국에서 일했을 때는 주구장창 자바와 스프링, 오라클 DB로만 개발하여 이 기술 스택을 벗어나는 회사를 기피했죠. 힘들게 쌓은 지식과 경험을 새로운 업무에서 100% 활용할 수 없을까봐 걱정이 됐고, 앞으로의 경력에 도움이 될지 모를 생소한 기술을 배워야 하는데 부담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 개발을 시작한 지 언 16년이 지난 현재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그 때 참 제 생각이 참 짧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껏해야 몇 년 안 되는 경험을, 까짓 것 좀 못 살리면 어떻다고… 그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을 그냥 보내 버렸을까요? 깐깐하게 기술 스택을 따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 바닥에서 점점 경력이 쌓이다 보니 자신에게 잘 맞는 비즈니스 도메인을 선택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한번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냉정하게 생각을 해볼까요?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게 힘든가요? 새로운 비즈니스를 배우는 게 힘든가요? 개발 관련된 지식은 온라인에 학습 자료가 풍부하며 심지어 무료도 많은데요. 하지만 특정 비즈니스에 대한 지식은 배우는데 많은 비용이 들거나 체계적인 교육없이 노하우처럼 전수되는 경우도 있죠. 따라서 상대적으로 배우려는 의지와 적극성이 더 필요합니다. 해당 비즈니스 도메인에 흥미가 없다면 배우는 과정 자체가 고통이 될 수도 있고요.

아무래도 첫 직장은 선택하기 보다는 선택 당하는 입장이라서 자신이 원하는 비즈니스 도메인을 고르기가 쉽지 않은데요. 저도 첫 직장에서는 생각치도 못했던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게 되었고,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와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과 같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방대한 엔터프라이즈 솔루션에 대해서 공부해야 했습니다. 선배 어깨 넘어로 배우다 보니 답답하기도 했지만, 전문 교육은 업무를 1~2주 빠져야 해서 신청하기가 눈치가 보였죠. 그런데 솔직히… 어떻게 보면 이건 다 핑계입니다. 저는 단지 그 비즈니스 도메인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이후에 다른 회사들을 다니면서 모바일 앱 스토어나 전자 상거래 플랫폼과 같은 대국민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는데요. 아무래도 제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서비스다 보니 비즈니스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지더라고요. “아, 내가 주문한 제품이 이런 이런 과정을 거쳐서 결제가 되고, 이런 이런 과정을 거쳐서 배송이 되고, 반품은 이런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이뤄지는구나!” 자꾸 호기심이 생겨서 사업 담당자를 찾아가서 이것저것 자주 물어보곤 했습니다. 귀찮아 하시면 어떨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비즈니스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찾아오는 개발자는 어디서든 환영받으니까요.

현재 저는 캐나다에서 아이를 키우는 중이어서, 여느 학부모처럼 저의 관심사는 교육 쪽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줄곧 한국에서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캐나다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 매우 생소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기회가 있었지만 EdTech(교육 기술) 분야에서 한 번 일해보기로 결심했지요. 몇 년간 이 분야에서 몸 담으면서 캐나다의 공교육 행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치며, 부모들은 어떤 교육을 기대하고 있는지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일을 하면서 체득한 도메인 지식들은 캐나다에서 육아를 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프로젝트 때문에 캐나다를 포함한 여러 교육 선진국들의 유학 프로세스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는데요. 저는 한 번도 해외 유학을 가보지 않아서 이 쪽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이었는데, 이제는 제 주변에 있는 많은 이민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 나라에서 공부하고 정착까지 하게 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처럼 자신이 평소에 관심이 있는 비즈니스 도메인에서 일하게 되면 단순히 소프트웨어 개발을 넘어, 자연스럽게 해당 비즈니스 도메인에서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답니다. 도메인 전문성을 갖춘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귀해서 시장에서 항상 좋은 대우를 받는 건 다들 아실 거에요.

요즘에는 진짜 소프트웨어 개발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가 없다고 하죠? 그래서 저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원하는 비즈니스 도메인을 선택할 수 있는 진짜 얼마 안 되는 축복받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개발자로 커리어를 쌓아가시면서 어떤 기술을 쓰고 싶으신지 뿐만 아니라, 자신이 어떤 비즈니스에 흥미를 느끼시고 배우고 싶으신지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여러분은 저보다 좀 더 빨리 기술 스택의 굴레에서 벗어나 좀 더 재미있는 비즈니스 도메인에서 일하실 수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